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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폐어망으로 플라스틱 만들고, 폐배터리서 소재 추출 (2022.10.08 중앙일보)

2022.10.08 Views 34 ESG 연구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7718#home
 

산업계 폐기물 재활용 바람

코스피 상장사인 코스모화학은 지난해 말 1만2000원대였던 주가가 지난달 한때 3만원대까지 껑충 뛰었다. 이 회사의 본업은 이산화티타늄과 황산코발트 등 산업용 소재 생산이다. 그런데 기존 사업 노하우를 살려 전기차용 폐배터리 리사이클(재활용) 사업에 뛰어들기로 하고 수백억원의 투자 계획을 공시하자 주가가 3개월 만에 80% 넘게 올랐다. 안성덕 코스모화학 대표는 “수년 전부터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유망하다고 보고 준비했다”며 “앞으로 투자할 설비를 통해선 폐배터리에서 나오는 스크랩(강철 제련·재생 원료로 쓸 수 있는 금속 부스러기 등의 폐기물)도 재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의 폐기물 재활용 열풍이 거세다. 특히 전기차 산업의 성장성과 직결된 폐배터리 분야는 심각한 증시 불황 국면에서도 이 분야에 뛰어든 기업 주가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만큼 각광받고 있다. 올해 7월 코스닥에 상장한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성일하이텍 주가도 8만원대에서 지난달 중순 16만원대까지 2배로 치솟았다. 이 회사는 2000억원대 신규 설비 투자를 공시했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현재 유의미한 상업화에 성공한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은 중국에 3곳(Brunp·GEM·화유코발트), 벨기에에 1곳(유미코아)이 있고 이외엔 성일하이텍밖에 없어서 시장 선점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폐기물 재활용, 기업 선택 아닌 필수

전기차용 폐배터리 창고. [사진 한국환경공단],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전기차용 폐배터리 창고. [사진 한국환경공단],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전기차용 배터리의 수명은 10년 정도다. 국내에 전기차가 보급되고,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게 2011년이니 폐배터리 물량이 늘어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실제 환경부는 2020년 275개였던 국내 폐배터리 발생량이 2025년 3만1696개, 2030년 10만7520개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폐배터리를 그대로 폐기하는 대신 재활용 공정에 투입하면 코발트·니켈·리튬 등의 소재를 얻게 되고, 이를 새 배터리 제조에 쓸 수 있다. 중국·남미 등 일부 지역에 집중된 광물 자원의 수입 의존도를 국가적으로 낮추면서 자원을 절약해 기업의 수익성을 강화하고, 환경도 보호하는 일석삼조 효과를 얻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명이 다 돼 주행 거리가 감소하고 충전 속도가 느려진 전기차용 배터리는 더는 쓰기 어렵다”며 “하지만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갖는 원가 비중은 30~40%에 달해, (배터리를) 그대로 폐기하는 것보다 새 배터리 제조에 써야 하는 돈을 아끼는 게 기업의 수익성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주요국은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선 2030년부터 유럽 내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때 일정 비중 이상(코발트 12%, 니켈 4%, 리튬 4% 등) 재활용 소재를 의무적으로 쓰도록 하는 법안이 올 4월 통과됐다. 미국 역시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속내가 포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8월 발효로 폐배터리 사용 독려에 나섰다. 이에 맞선 중국도 세계 최대 규모로 형성한 자국 배터리 시장의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올 상반기 폐배터리 재활용 관련 업체가 4만 곳을 넘어섰다. 이에 힘입어 글로벌 폐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5년 7억9400만 달러(약 1조1300억원)에서 2040년 573억9500만 달러(약 81조5800억원)로 연평균 33%씩 고속 성장할 전망이다(삼정KPMG 집계).

시장 흐름을 파악한 국내 대기업들도 직·간접적으로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가세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과 함께 캐나다의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Li-Cycle 지분 투자로 니켈 2만t을 공급받기로 했다. 중국의 화유코발트와 현지 합작 법인을 설립하는 일도 추진 중이다. SK온은 미국 포드와 설립한 현지 합작 법인 블루오벌SK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폐배터리를 재활용 업체 레드우드머티리얼즈를 통해 다시 제품 생산에 활용할 계획이다. 포스코홀딩스는 폴란드에 연산 7000t 규모의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준공했다. 유럽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와 스크랩을 수거해 중간가공품(블랙매스)을 생산할 예정이다.

폐배터리는 최근 산업계가 재활용에 힘쓰고 있는 폐기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인 선진국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추진이 확산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의 강화를 의미하는 ‘ESG 경영’이 화두로 부상하면서 각종 폐기물 재활용은 기업들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예컨대 EU에서 시행을 앞둔 공급망 실사 법안은 기업들의 ESG 경영 현황을 점검, 문제가 발견됐을 때 이를 공개하고 해당 기업에 대응책을 요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업 입장에선 친환경 경영에 힘쓰지 않으면 이런 규제를 우려한 현지 업체들의 계약 파기 같은 불이익으로 수출 경쟁에서 뒤처질 공산이 그만큼 커졌다.

이는 전기차용 배터리뿐 아니라 반도체·스마트폰·가전·디스플레이 등의 국내 주력 수출 업종 전반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폐기물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최대한 재활용한다’는 기조로 이어지고 있다. 폐수와 폐플라스틱, 폐유리 등의 재활용이 활발해진 배경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제조용 물(초순수)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찌꺼기에서 구리 성분을 추출, 구리괴(구리 덩어리)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활용 중이다. 반도체 공장의 청소진공(CV) 설비 필터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도 녹여서 금이나 텅스텐 등의 성분을 추출해 재활용한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부문에서도 인도양 인근에서 수집된 폐어망을 재활용, 일반 플라스틱보다 이산화탄소 발생량 저감 효과가 25%가량 높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갤럭시S22 등의 인기 제품에 적용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SK하이닉스는 품질 테스트 때 기준 미달로 판명돼 폐기 처리하던 불량 메모리칩을 절반 용량 제품(하프칩)으로 재활용해 상품화하고 있다. 8GB(기가바이트)에선 불량 제품이더라도 4GB에선 하자 없는 제품이 될 수 있다. LG전자는 TV·냉장고·에어컨 등 다양한 가전의 내장 부품 원료로 재활용 플라스틱을 적용 중이다. LG전자는 2025년까지 누적 20만t, 2030년까지 60만t의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LG디스플레이는 필름 분리 기술을 개발해 폐유리를 전량 재활용하고 있다. 과거엔 디스플레이를 만들 때 쓰는 유리 원판은 디스플레이 규격에 따라 잘라내고 남은 부분은 모두 폐기 대상이 됐다. 유리에 부착된 필름 때문에 재활용하지 못하고 매립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름 분리 기술을 적용하면서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경기 파주와 경북 구미의 공장에서 나온 폐유리 등 폐기물의 98.5%를 재활용할 만큼 효과적인 친환경 경영을 달성하고 있다. 이 외에 삼성디스플레이는 폐기되는 에천트(식각에 사용하는 액체 및 기체)에서 은 성분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해 재활용 중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의 폐기물 재활용 행보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만 봐도 공룡들의 친환경 질주엔 거침이 없다. 미국의 애플은 제품을 만들 때 텅스텐·코발트 등 재활용 소재가 전체 소재의 20%가량을 차지하도록 하고 있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서 한국의 강력한 경쟁 상대인 대만 업체 TSMC는 연말부터 재활용한 폐수를 반도체 생산에 활용하기로 했다. TSMC는 2020년 RE100(기업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약속하는 글로벌 캠페인)에 가입할 만큼 ESG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의 화웨이와 BYD도 친환경 포장재 사용과 고형 폐기물 발생량 감축 등에 힘쓰고 있다.

애플 등 글로벌 기업도 친환경 질주

문제는 친환경 경영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실천할 여력이 대기업에 비해 태부족한 대다수 중소기업들이다. 대구 지역의 한 제조사 관계자는 “유럽 등 선진국에서 고객사 요구에 대응하면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ESG 경영이 필수이지만, 영세한 기업 입장에선 비용 부담이 워낙 커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 6월 국내 수출 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 기업의 52.2%가 ‘ESG 경영 미흡으로 향후 고객사(원도급사)로부터 계약·수주가 파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ESG 실사에 대한 대비 수준이 ‘낮다’는 응답률도 77.2%로 ‘높다’(22.8%)를 압도했다. 이재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국내 대기업들도 해외에서 국내 협력사의 ESG 경영 현황을 보고하는 과정에서 준비가 안 됐다고 판단하면 배제하고 (유리한 계약을 위해) 해외 협력사를 새로 구하게 될 것”이라며 “중소기업들은 이런 상황을 기회로 보고 ESG 경영에 거부감을 갖는 대신 더욱 과감하게 나서야 하고, 이들과 협력 관계에 있는 대기업들도 중소기업이 ESG 경영을 잘하고 있다는 걸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먼저 나서서 컨설팅 등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 등 전문 기관들의 관련 컨설팅과 전문 인력 양성 노력도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증시 투자에선 폐배터리 등 폐기물 재활용 관련주(株)의 인기 과열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증권사 연구원은 “폐배터리의 경우 대세 분야로 떠오르면서 주가 급등 사례가 속출하다보니, 최근 기술·자본력이 충분하지 않은 기업까지 준비가 덜 됐는데도 주가 부양을 위해 신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보는 일이 있다”며 투자자들이 최대한 신중하게 검토한 다음 투자할 것을 당부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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